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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법령·학비 검증 기준: 2026-10-29

제2부 · 적성과 토양 · 제4장 · 공부하라고 등 떠미는 대신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집 · 약 5분 독서

말 잘하는 아이가 변호사가 된다는 오해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Grit)’과 내향적 독서가들이 호주 법정을 지배하는 이유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독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변호사님, 첫째는 말싸움에서 절대 안 지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변호사 시키면 딱일 것 같은데, 둘째는 너무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법대는 무리겠죠?”

그럴 때면 저는 웃으며 제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냅니다. 청소년기 내내, 저는 남들 앞에 나서서 연설하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말로 누군가를 압도하는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었죠.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구조 분석하길 좋아했거든요. 전형적인 내향형 공학도였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변호사가 된 뒤 지난 16년, 수천 건의 사건을 실제로 처리해 봤습니다. 대중이 떠올리는 변호사의 이미지와 실제 유능한 변호사의 일상은 그 간극이 엄청나더군요.


솔리시터(Solicitor)의 하루는 85%가 ‘읽기와 쓰기, 그리고 경청’입니다

영미법계인 호주의 변호사는 두 직역으로 나뉩니다.

  • 바리스터(Barrister)는 법정 변론을 전문으로 위임받는 독립 법정변호사입니다.
  • 솔리시터(Solicitor — 전체 법조인의 약 90% 이상)는 의뢰인을 직접 만나 사건을 설계하는 사무변호사예요. 계약서, 법률의견서, 진술서, 소장을 작성하고 협상과 실무 전반을 총괄하죠.

유능한 솔리시터의 평범한 화요일 풍경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일 년 내내 가도 화려한 몸짓으로 배심원을 울리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대신 아침 9시부터, 수백 페이지 분량의 판결문과 행정법 조문을 샅샅이 읽습니다. 의뢰인의 떨리는 목소리 속에서 숨은 핵심 사실관계를 차분히 건져 올리죠. 그 뒤 심사관이나 판사가 반박할 수 없도록 단단한 문장으로 서면을 엮어냅니다.

말만 앞세우고 성격이 급한 사람은 결정적인 단서 조항 하나를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다 사건을 그르치기 일쑤예요. 호주 법조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최고의 재능은 따로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세심하게 읽고 모호한 문장을 참지 못하는 태도, 끝까지 앉아 텍스트를 완독하는 내향적 성향이에요.


천재성을 이기는 힘: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Grit)’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과의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 교수가 남긴 추적 연구가 있어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전국 철자 말하기 대회, 전문직 종사자들을 살펴본 끝에 성공의 제1변수를 밝혀냈죠. IQ나 외향성이 아니라 장기적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 곧 ‘그릿(Grit)’임을 증명한 겁니다.

로스쿨 1학년 첫 학기, 원어민처럼 영어가 유창한 학생들이 수업 시간 토론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학생이나 이민 1.5세대 학생들은 그 유창함에 기가 죽습니다. 도서관 구석에서 입술을 깨물곤 하죠.

하지만 학기가 끝나고 성적표를 받아 드는 날, 놀라운 역전이 일어납니다. 수업 시간에 유창하게 말하던 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판례 원문 대신 요약본만 대충 읽고 시험장에 들어갑니다. 성적표에는 평범한 점수(Pass 또는 Credit)가 찍히죠. 영어 발음에 한국 억양이 남아 있어도 결과는 달라집니다. 매일 밤 판례 원문을 정독하고 법리 구조를 표로 정리해 외운 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학생들이 과목 수석(First in Class)과 우등(Distinction / High Distinction)을 휩쓸어 가죠.

서른두 살, 저는 본드 대학교에서 우등 졸업(2nd Class Honours Division A)을 했습니다. 개인재산거래법(Personal Property Transactions)과 세법(Principles of Taxation Law) 두 과목 수석상(First in Class)도 함께 받을 수 있었어요. 세 아이가 잠든 밤, 식탁 스탠드 아래서 남들보다 두 번 더 판례를 읽고 구조를 분해했습니다. 공학도의 그 우직한 루틴 덕분이었죠.


집에서 조용히 발견하는 ‘미래 법조인’의 5가지 원석 신호

우리 아이나 내 배우자 안에 법학적 잠재력이 숨어 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성적표 등수만 보실 필요는 없어요. 일상에서 아래 다섯 가지 장면을 차근차근 관찰해 보세요.

  1. “그건 공평하지 않잖아!”에 멈춰 서는 감각: 자기 이익 때문만이 아닙니다. 규칙이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될 때 불편함을 느끼고 기준을 묻습니다.
  2.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습관: 말의 범위와 예외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항상 그런 거야, 아니면 가끔 그런 거야?” 하고 되묻는 식이죠.
  3.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려는 균형감: 친구들 사이의 다툼, 뉴스 속 논란을 볼 때 한쪽 편만 들지 않아요. “저 사람 입장에서는 왜 그랬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합니다.
  4. 긴 글을 읽고 핵심 세 줄을 뽑아내는 요약력: 복잡한 안내문, 약관, 긴 칼럼을 끝까지 읽습니다. 그러고는 가족에게 쉽게 설명해 주죠.
  5. 실패한 다음 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회복탄력성: 첫 에세이에서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도 자책으로 무너지지 않아요. “교수님 코멘트가 왜 이랬는지 고쳐 볼게”라며 다시 연필을 쥡니다.

다섯 가지 가운데 두세 가지만 보여도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로스쿨 과정에서 훈련받으며 단단한 전문가의 실력으로 길러 줄 테니까요.